분류 전체보기70 좋아서 시작한 일은 언제부터 일이 되는 걸까 9월에는 이상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하지 못했다.책을 거의 읽지 못했고, 운동도 하지 못했다. 매주 해오던 콘텐츠 작업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해야 할 일은 계속 해냈지만, 정작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들은 자꾸 뒤로 밀렸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콘텐츠 퀄리티가 예전보다 떨어지는 것 같았고, 운동을 못 하면 계획에서 밀려난 기분이 들었다.잠드는 시간은 늦어졌고, 가까운 사람에게 괜히 짜증을 내는 날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책을 읽을 집중력은 없으면서 인터넷은 계속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여행 일정을 검색하고, 살 물건을 찾아보고, SNS와 유튜브를 넘겨봤다.책 몇 페이지를 읽는 건 그렇게 어려운데,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탐색하는 일은 쉬지 않고 할 수 있었다.'.. 2026. 10. 5. 우리는 왜 같은 문제를 보고도 서로 다른 것을 먼저 볼까? 최근 허브 코헨의 『협상의 기술 1』을 읽다가 한 대목에서 꽤 오래 생각이 멈췄다. 책에서는 연봉 협상의 한 방법으로 원하는 연봉을 모두 얻기 어렵다면 회사가 수용할 수 있는 다른 조건들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보라고 이야기한다. 추가 휴가, 교육 기회, 스톡옵션, 프로젝트 보너스, 주차 공간처럼 회사에는 부담이 적으면서도 개인에게는 충분히 가치가 있을 수 있는 조건들이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협상이다. 그 부분을 읽다가 문득 오래전 직장생활을 하던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같아야 공평하다'고 생각했다젊었을 때의 나는 조직 안에서 공평함과 형평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특히 나와 비슷한 연차이고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나보다 높은 연봉을 받거나 더 좋.. 2026. 9. 28. 이해해야 다가갈 수 있다는 착각 ― 명절 차례를 두고 아빠와 부딪혔다 명절을 앞두고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다. 내려가는 표는 이미 매진이었고, 반대로 올라오는 표는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제안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내려가는 대신 부모님이 올라오시면 안 될까. 어디서 보내든 가족이 함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빠는 단칼에 거절했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야 하니 집을 비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게 차례는 가족을 기억하고 이어가기 위한 의례처럼 느껴졌는데, 그것 때문에 지금의 가족이 만날 수 없다니.가족을 이어주는 의례가 오히려 만남의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 내게는 묘한 역설처럼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화부터 났을 것이다.아빠와 나는 유독 의견 충돌이 잦다. 각자의 생각을 쉽게 굽히지 않는 성향이 어쩌면 닮아서 더 부딪히는지.. 2026. 9. 16.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 폴 오스터 『바움가트너』를 읽고 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에서 일흔을 넘긴 바움가트너의 현재 속에는 세상을 떠난 아내 애나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애나를 잊어가는 것이 아니라, 애나를 잊지 않은 채 애나가 없는 세상에서도 다시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고 느꼈다.그런데 책을 덮고 난 뒤 이상하게도 내게 오래 남은 것은 죽음보다 ‘함께했던 시간’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사람을 남기는 걸까바움가트너에게 애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지만 여전히 생생하다.그에게는 애나의 목소리도, 모습도, 함께했던 순간들도 남아 있다.그건 두 사람이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고, 다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평범한 날들까지.그 수많은 시간이 한.. 2026. 9. 9. 나는 이 서열에서 벗어나고 싶은 걸까 - 『감정채굴』 × 『서열사회』를 읽고 얼마 전 『감정채굴』이라는 책을 읽었다.얇은 책이라 가볍게 펼쳤는데, 읽기 시작하자마자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좋아요와 ‘ㅠㅠ’가 자본이 된다니...생각해보니 나는 그날도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ㅠㅠ’를 썼고, 스레드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글에 하트를 눌렀다.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끼면 웃는 이모지를 보내고,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공유하며, 때로는 내 감정을 직접 SNS에 올리는 건 이제 너무나도 일상적인 행동이다. 나는 그저 내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감정채굴』은 우리가 플랫폼에서 표현하는 감정이 기술과 결합하면서 어떻게 데이터가 되고, 다시 자본주의의 자원이 되는지를 여러 사례로 보여준다.좋아요, 이모지, 스티커, 공유하기이런 기능을 이용하며 콘텐츠를 소비하지만, 동.. 2026. 9. 1. 타인의 이중잣대는 잘 보이는데, 왜 나의 것은 보이지 않을까 ―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읽은 뒤의 회고 얼마 전 가족과 평창 발왕산에 갔다.케이블카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입구에 부채가 놓여 있었다.케이블카 안이 더우니 이용하라고 준비해둔 부채라고 생각해 하나를 들고 탔다.정상에 도착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반납할 곳을 찾았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위에도 반납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올라가는 동안 사용하라고 준비해둔 부채라면 정상에서 반납할 수도 있게 해두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들과 작은 토론이 시작됐다. 가족들의 의견은 대체로 비슷했다.“원래 있던 곳에 다시 가져다 놓아야지.”빌린 곳이 아래라면 내려갈 때 그곳에 반납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나처럼 케이블카 안에서 쓰라고 준비해둔 물건이라고 생.. 2026. 8. 24.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을까 : 페르소나는 선택한 가면일까, 삶을 견디며 굳어진 얼굴일까 |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읽었다.의식의 흐름을 따라 여러 인물의 생각이 예고 없이 오가는 소설이라 읽는 내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마지막 파티 장면은 오래 남았다.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지위와 교양을 드러내고 있었다. 겉으로는 세련되고 여유로워 보였지만, 내 눈에는 모두가 자기만의 가면을 쓴 채 서로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클래리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의 클래리사라기보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분위기를 살피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댈러웨이 부인’으로 서 있었다. 그녀는 파티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지만, 정작 자신의 깊은 내면까지 누구와 나누고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페르소나를 가식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자신.. 2026. 8. 20. 우리는 왜 가족을 ‘한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가 -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 《아메리칸 뷰티》 리뷰 ※ 이 글에는 두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다.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고, 타인은 모르는 모습까지 공유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족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확신한다.하지만 우리는 가족을 너무 오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한 인간을 ‘딸’, ‘아내’, ‘남편’, ‘아버지’라는 역할 속에 가두고, 자신이 알고 있던 과거의 모습으로만 판단하면서 말이다.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와 《아메리칸 뷰티》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닌 작품이다.한 작품은 조현병 증상을 보인 딸과 그 병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가족의 오랜 시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고,다른 작품은 미국 중산층 가정의 균열을 풍자적으로 그린 극영화다.형식도 배경.. 2026. 8. 10. 우리는 왜 사유를 잃어버렸을까 -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고 요즘은 무엇이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른 답을 얻는 데 익숙해졌다.궁금한 것이 생기면 검색하고, 긴 글은 요약해서 읽는다. 영상은 배속으로 보고, 생성형 AI는 몇 초 만에 글과 이미지, 보고서를 만들어 준다. 정보를 찾고 결과물을 만드는 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깊이 생각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무언가를 읽다가도 알림이 오면 곧바로 화면을 바꾸고, 잠시 시간이 생기면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은 어느새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됐다. 우리는 언제부터 '생각하는 시간'보다 '답을 얻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을까.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으며 그 질문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우리는 .. 2026. 8. 3. 이전 1 2 3 4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