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감정채굴』이라는 책을 읽었다.
얇은 책이라 가볍게 펼쳤는데, 읽기 시작하자마자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요와 ‘ㅠㅠ’가 자본이 된다니...
생각해보니 나는 그날도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ㅠㅠ’를 썼고, 스레드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글에 하트를 눌렀다.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끼면 웃는 이모지를 보내고,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공유하며, 때로는 내 감정을 직접 SNS에 올리는 건 이제 너무나도 일상적인 행동이다.

나는 그저 내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채굴』은 우리가 플랫폼에서 표현하는 감정이 기술과 결합하면서 어떻게 데이터가 되고, 다시 자본주의의 자원이 되는지를 여러 사례로 보여준다.
좋아요, 이모지, 스티커, 공유하기
이런 기능을 이용하며 콘텐츠를 소비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다.
바로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관한 데이터다. 소비자인 줄 알았던 내가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한 셈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반응하는지, 무엇을 공유하는지.
그렇게 쌓이는 수많은 감정과 행동은 플랫폼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된다.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몰라서 계속 사용하는 걸까 아니면 알아도 그냥 사용하는 걸까'
나 역시 플랫폼이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SNS를 열었고, 누군가의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편리하고 재미있었고, 이미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데이터에서 서열로: 기회의 차이를 만드는 기록들
『감정채굴』을 읽고 다음으로 『서열사회』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데이터'라는 연결점이 눈에 들어왔다.
『서열사회』는 전문가들의 논의를 다루고 있어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점차 한 가지 사실을 납득하게 되었다. 데이터에 의한 평가와 서열의 사회가 그리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고 살아간다.
나만 해도 하루에 서너 개의 앱은 거의 매일 사용하고, 많게는 열 개가 넘는 앱을 어렵지 않게 오간다.
검색하고, 결제하고, 쇼핑하고, 길을 찾고,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고, 누군가의 콘텐츠에 반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생활은 훨씬 편리해졌다.
나에게 맞는 정보를 추천받기도 하고,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더 나은 조건이나 혜택을 얻는 경우도 있다.
기업은 데이터를 얻고, 나는 편리함과 혜택을 얻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데이터가 더 많은 영역에서 활용될수록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기준도 점점 세밀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와 분류는 때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택과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열사회』를 읽으며 내가 흥미롭게 느낀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데이터는 단순히 나를 설명하는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돌아오는 조건과 기회의 차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감정채굴』을 읽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계속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면,
『서열사회』를 읽으면서는 “그렇게 쌓인 데이터는 다시 우리의 삶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걸까
여기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단순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SNS를 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앱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누가 나에게 좋아요를 누르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 선택할 자유는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조금 복잡해진다.
앱을 사용하면 편리하다. 검색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혜택을 비교하면 같은 돈을 쓰고도 조금 더 아낄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잘 활용하면 이전보다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용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과, 사용하지 않아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 아닐까.
이것은 책의 결론이라기보다, 두 책을 연이어 읽으며 내게 생긴 의문이었다.
기술과 플랫폼이 주는 편리함을 충분히 누리면서 동시에 그 구조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검색은 제2의 천성
『서열사회』를 읽으면서 유독 기억에 남았던 표현이 하나 있었다.
검색은 제2의 천성이다.
책을 읽다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최근 스마트폰을 바꾼 일이 떠올랐다.
나는 얼마 전 약 170만 원을 주고 S26 Ultra를 구입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
'이왕 비싼 돈을 주고 샀으니 최대한 잘 써야겠다.'
그런데 잘 사용하려면 내가 직접 찾아봐야 했다.
어떤 기능이 있는지 검색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활용하는지 찾아보고, 필요한 설정을 하나씩 적용해봤다.
그 과정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하지만 찾아본 만큼 이전에는 몰랐던 기능을 알게 됐고, 그만큼 스마트폰에서 얻는 편리함도 커졌다.
그 경험을 떠올리고 나니 ‘검색은 제2의 천성’이라는 표현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지금은 정보가 없어서 못 하는 시대라기보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무엇을 찾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가까운 것 같다. 검색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AI에게 무엇을 질문할 것인지, 얻은 답을 어떻게 판단하고 실제 생활에 활용할 것인지도 중요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때로는 돈을 아껴주기도 하고, 시간을 줄여주기도 하며, 더 많은 선택지를 발견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책 속의 ‘서열’이라는 거대한 단어를 내 일상과 연결해보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검색과 활용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그 작은 차이들이 누적되면서 각자가 얻을 수 있는 편의와 혜택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이 싫다면서, 왜 나는 더 잘 쓰려 할까
여기까지는 두 책을 읽으며 내가 이해하고 느낀 부분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내 행동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조금 다른 질문이 생겼다.
나는 데이터가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며 그에 따라 격차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다.
플랫폼 기업이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데이터로 만들고 그것을 자신들의 자산으로 축적한다는 사실도 마냥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작 현실의 나는 그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 SNS를 사용한다.
-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면 기능을 검색한다.
- 새로운 AI가 등장하면 가능하면 더 잘 활용하고 싶다.
-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면 찾아보고 싶다.
- 필요한 앱을 설치한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아주 인간적인 이유였다.
편리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손해도 보고 싶지 않다.
같은 시간과 돈을 쓴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얻고 싶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면 나 역시 그 능력을 갖추고 싶다. 이런 욕망을 단순히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꽤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질문은 더 어려워졌다.
나는 벗어나고 싶은 걸까, 올라가고 싶은 걸까
『감정채굴』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인간으로서 그저 존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부분을 읽으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바로 다음 순간 생각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그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조차 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데이터로 사람을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사회가 불편하면서도, 그 사회가 제공하는 편리함은 누리고 싶다.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면서도, 내가 검색하고 공부한 만큼 더 많은 정보와 혜택을 얻는 것은 싫지 않다.
경쟁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과, 그 경쟁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어쩌면 두 마음은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고 나니 그래서 오히려 내 마음이 궁금해졌다.
내가 불편했던 것은 정말 서열 그 자체였을까.
아니면 그 서열에서 내가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을까.
아마 나는 앞으로도 검색하고, 배우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내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고,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하나의 능력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이 남는다.
오늘의 질문
우리는 이 서열에서 자유롭고 싶은 걸까?
아니면 뒤처지고 싶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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