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에서 일흔을 넘긴 바움가트너의 현재 속에는 세상을 떠난 아내 애나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애나를 잊어가는 것이 아니라, 애나를 잊지 않은 채 애나가 없는 세상에서도 다시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난 뒤 이상하게도 내게 오래 남은 것은 죽음보다 ‘함께했던 시간’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사람을 남기는 걸까
바움가트너에게 애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그에게는 애나의 목소리도, 모습도, 함께했던 순간들도 남아 있다.
그건 두 사람이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고, 다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평범한 날들까지.
그 수많은 시간이 한 사람의 삶 속에 다른 한 사람을 남겨놓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의 몇 대 위의 조상을 떠올렸다.
분명 나와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게는 직접 떠올릴 수 있는 목소리도 표정도 없다.
요즘에서야 남아 있는 기록과 그분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
한쪽에는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아도 수십 년을 함께한 관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분명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만 함께한 기억이 없는 관계가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어떤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차이를 생각하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큰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해 온 사람들이 떠올랐다.
20년을 함께한 친구들에게
얼마 전, 20년을 함께한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스무 살 무렵 처음 만나 어느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지금까지 이어진 친구들이다.
처음 편지를 쓰려고 했을 때는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정작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고마움, 그 친구 덕에 웃었던 순간들을 문장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그런데 한 사람씩 떠올리며 편지를 쓰다 보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20년 동안 우리는 서로가 없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나고 헤어지고, 고민을 나누며 서로의 삶 한구석에 계속 존재해 왔다.

『바움가트너』를 읽고 나니 그 시간이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우리도 지금 서로의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고...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던 음식, 여행지의 작은 소동, 별 의미 없이 주고받았던 농담들.
그 소소한 하루들이 쌓여 훗날 ‘나’라는 사람의 일부가 되고,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으로 남는다.
그래서 마음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표현하기로 했다.
표현을 해야 비로소 닿는 마음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일까
처음에는 여기까지 생각했다.
오래 함께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조금 더 귀하게 생각해야겠다고.
그런데 생각이 거기서 멈추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들뿐일까.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 매일 마주치지만 이름도 모르는 사람, 잠깐 같은 공간에 머무는 타인들.
물론 그들을 오랜 친구처럼 사랑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나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듯,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자신만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나에게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타인이지만, 그 사람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관계와 기억, 걱정과 기쁨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지금 같은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거나 언제나 친절해야 한다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길을 걷다 마주치는 한 사람을 바라볼 때,
‘저 사람도 지금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차이가 생길지는 궁금하다.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
『바움가트너』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한 사람이 죽은 아내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은 조금 다른 생각이었다.
가까운 이들과는 아주 많은 시간을, 누군가는 잠깐의 시간을,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같은 시대의 어느 하루를 공유한다.
우리가 서로의 삶에 얼마나 오래 남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오늘 스쳐 지나간 대부분의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같은 시대 안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 곁을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이전보다 조금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어진다.
오늘의 질문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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