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전권을 읽었다.
만화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인류가 어떻게 오늘의 문명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하지만 책장을 덮은 뒤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역사적 사실보다 하나의 질문이었다.
인간은 결국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인간은 '이야기'를 믿는 존재였다
인류는 사자보다 강하지도 않았고, 코끼리처럼 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사피엔스』는 그 이유를 인간만이 함께 믿을 수 있는 '상상의 질서'에서 찾는다.
국가, 종교, 화폐, 법, 기업, 인권.
이들은 자연 속에 원래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믿었기에 현실이 되었고, 인류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규모로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가장 강한 동물이 아니라,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가장 풍요로운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농업혁명 이후 인류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과학은 질병을 줄였고, 산업혁명은 생산성을 높였으며, 기술은 우리의 삶을 이전보다 훨씬 편리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것을 가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불안도 함께 안고 살아가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풍요가 반드시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경쟁과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사용했고, 숲은 줄어들었으며, 수많은 생물은 사라졌고, 기후와 환경은 이전보다 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발전은 분명 인류에게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공존이라는 가치를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인류의 발전은 언제나 순수한 이상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제국은 새로운 문화를 퍼뜨리기도 했지만,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하기도 했다.
신대륙의 발견은 새로운 세계를 열었지만, 그 이면에는 식민지 개척과 착취가 있었다.
종교는 많은 사람에게 위안과 공동체를 제공했지만, 역사 속에서는 권력과 결합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역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를 만들어냈지만, 그 부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사피엔스』는 어느 한쪽을 단순히 선하거나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인류의 발전은 언제나 이상과 욕망, 협력과 경쟁, 공익과 사익이 함께 움직여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발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발전일까.
신이 되어가는 인간, 그에 걸맞은 책임은 있는가
책의 마지막은 더욱 인상 깊었다.
인류는 이제 자연을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자연을 다시 설계하려 하고 있다.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 생명공학, 수명 연장
최근 읽었던 『노화의 종말』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인간은 이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노화 자체를 극복하려 한다.
더 오래 살고, 더 강해지고, 더 편리한 세상을 만들고, 불가능했던 것들을 하나씩 가능하게 바꾸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왜 발전해야 하는가'보다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인간은 이제 신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곳까지 발을 내딛고 있다.
생명을 설계하고, 노화를 늦추며,
인공지능을 만들고, 언젠가는 새로운 생명까지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우리는 신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된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도 함께 갖추게 될까
아마도 인간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AI도, 생명공학도, 우주개발도...
하지만 기술의 발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힘을 어떤 마음으로 사용할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왜'를 물어야 할 때
『사피엔스』를 읽으며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인간은 기근을 줄였고, 질병을 극복해 왔으며,
우주로 나아갔고, 이제는 AI와 생명공학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것은 놀라운 발전이다.
인간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증명해 왔다.
이제는 '왜 그것을 하려 하는가'를 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리고 하나의 질문을 더 던져본다.
우리는 신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된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도 함께 가질 수 있을까.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그 능력을 어떤 가치 위에서 사용할 것인지 증명해야 할 차례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질문
인간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알고 있을까요?
앞으로의 발전 속에서도 인간이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026 서울국제도서전 중앙일보 부스에서 만난 질문입니다.)
"인간다움을 위해,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사피엔스』를 덮고 난 뒤 제 마음속에 남은 질문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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