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허브 코헨의 『협상의 기술 1』을 읽다가 한 대목에서 꽤 오래 생각이 멈췄다.

책에서는 연봉 협상의 한 방법으로 원하는 연봉을 모두 얻기 어렵다면 회사가 수용할 수 있는 다른 조건들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보라고 이야기한다. 추가 휴가, 교육 기회, 스톡옵션, 프로젝트 보너스, 주차 공간처럼 회사에는 부담이 적으면서도 개인에게는 충분히 가치가 있을 수 있는 조건들이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협상이다.
그 부분을 읽다가 문득 오래전 직장생활을 하던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같아야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젊었을 때의 나는 조직 안에서 공평함과 형평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나와 비슷한 연차이고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나보다 높은 연봉을 받거나 더 좋은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왜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더 받고 누구는 덜 받지?’
그 차이가 때로는 차별처럼 느껴졌고, 꽤 큰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그 생각에 의문이 생겼다.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나 성과를 근거로 원하는 조건을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회사 역시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부당한 특혜가 아니라, 당사자와 회사가 서로의 필요를 조율해 만들어낸 협상의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비슷한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같은 보상을 받아야만 공평한 것일까.
내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공평함’의 기준이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몫을 요구해 본 적이 있었나
두 번째 생각은 조금 더 불편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무엇을 받는지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정작 내 능력과 성과를 회사에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있었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해냈고, 조직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래서 어떤 대우를 받고 싶은지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협상해본 적이 있었는지 돌이켜보았다.
솔직히 그렇지 못했던 순간이 많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요구해 볼 용기는 내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몫을 요구해 얻어낸 사람의 결과만 바라보고 억울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모든 보상의 차이가 정당하다거나 회사의 평가가 늘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더 많은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무조건 더 뛰어났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협상의 정보나 기회, 요구를 말할 수 있는 위치 역시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는 않으니까.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었다. 예전에는 단 하나라고 믿었던 ‘공평함’의 기준이 사실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출발점이 다르면 공정함의 답도 달라진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느꼈던 ‘공평함’에 대한 의문은, 무엇이 ‘공정한 판단’인가라는 더 넓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에서도 비슷한 충돌을 자주 마주한다.
노동환경을 둘러싼 문제에서 어떤 사람은 노동자의 안전과 인권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반면 다른 사람은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과 그로 인해 줄어들 수 있는 일자리를 먼저 걱정할 수 있다.
신기술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으니 개인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배우고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는 그보다 먼저 묻는다. ‘그 기술을 배울 시간과 환경,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이 애초에 모두에게 같은가?’
이런 차이가 반드시 어느 한쪽의 악의나 무지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문제를 두고도 무엇을 먼저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판단의 출발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글을 읽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차이를 선명하게 느낀 적도 있다.
『감정채굴×서열사회』에 관한 영상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을 때, 같은 내용을 보고도 남편은 개인이 얼마나 노력하고 책임을 다했는지를 먼저 떠올렸다. 반면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조건에 놓여 있었는지, 애초에 출발할 수 있는 환경은 같았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같은 문장을 읽었는데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서로 달랐다.
누가 일부러 다른 답을 찾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이 차이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가정해볼 때 한층 더 명확해진다.
회사가 어려워져 누군가를 해고해야 할 때, 과연 무엇이 공정한 선택일까?
성과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남기는 것?
오랫동안 회사에 기여해온 연륜을 고려하는 것?
부양가족이 있거나 재취업이 어려운 개인의 사정을 고려하는 것?
아니면 한 사람을 해고하는 대신 모두의 임금을 동일하게 10%씩 삭감하는 것?
하지만 모두에게 줄어드는 10%의 무게가 생계에 따라 같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또한 완벽하게 공평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성과를 볼 것인지, 처한 조건을 볼 것인지, 조직 전체의 생존을 볼 것인지에 따라 ‘공정한 선택’의 정의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다른 좌표에서 계산을 시작한다
과거의 나는 다른 사람과 나의 보상이 다르다는 ‘결과’만 보고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보게 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기준을 쥐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결과의 균등을 공정이라 믿고, 누군가는 성과에 따른 차등을 공정이라 믿는다.
누군가는 개인의 책임과 노력을 먼저 보고, 누군가는 그 사람이 놓인 조건과 환경을 먼저 본다.

그래서 갈등은 상대가 공정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 공정해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각자 완전히 다른 좌표에서 계산을 시작하기 때문에 충돌하는 것이다.
서로의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힐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곧바로 누구의 기준이 옳은지 가려내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보고 있는가.
그리고 상대는 어느 지점에서 판단을 시작했는가.
상대의 결론을 비난하기 전에, 그 사람이 과연 어디에서 생각을 시작했는지 그 출발점을 먼저 들여다보는 일.
어쩌면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작점은 바로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질문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혔던 순간,
나는 무엇을 먼저 보고 있었고 상대는 무엇을 먼저 보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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