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올해 들어 주식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다짐으로 퇴직금의 일부를 들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시장 상황이나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은 채, 그저 급등 순위에 올라오는 종목들을 보며 장대양봉이 생기면 무작정 올라타기 바빴던 대가로 큰 손실을 보았다. 차트도 볼 줄 모르면서 커뮤니티의 글에만 의존했다.
주가가 폭락하며 불안감에 잠을 못 자는 나를 보며 남편은 몇 번이나 주식을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손실을 메꾸어 보겠다는 미련과 탐욕 때문에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요행이나 운을 바라며 어떻게든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 속에서, 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피눈물 나는 손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한 장면이 뼈아프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스킬 남발하다가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어.
칼에 베이고 손이 데이고, 그 성과를 네 몸에 새겨야 진짜 요리사가 되는 거라고

기초 체력도 없이 남들의 요령(스킬)만 쫓아 급등주 매매를 남발하던 내 방식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칼에 베이고 손이 데이는 듯한 고통을 뼈에 새기고 나서야, 나는 내 분수를 직시하게 되었다.
내 나무의 '뿌리'와 '잎사귀'를 안다는 것
고통스러운 실패 끝에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남편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MBTI로 보면 남편은 ISTJ이고 나는 ESFJ이다. 남편은 경제 데이터 분석에 능하며 지루함을 견디는 인내력이 뛰어난 반면, 나는 새로운 경험과 직관적 영감 속에서 창작 활동을 할 때 비로소 에너지를 얻는다.

심리학의 대표적인 자아 분석 도구인 '나무(Tree) 투사 검사'에서는 나무의 구조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땅속에 가려진 '뿌리'는 인간의 근원적인 가치관과 무의식을 상징하고, 드러난 '가지와 잎사귀'는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행동 양식을 뜻한다고 한다. 나는 이를 우리 삶과 투자 방식에 대입해 보니, 왜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명확히 증명할 수 있었다.
뿌리(성격적 안정감과 근본) :
땅속의 뿌리는 현실과의 접속 수준과 안전 욕구를 반영한다. 나와 배우자는 삶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효율성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가치관의 '뿌리'가 닮아있기에 서로를 단단히 신뢰한다.
줄기(자아의 강도와 에너지) :
정서적 활력과 대처 능력을 뜻하는 줄기가 굵고 튼튼해야 흔들리지 않는다. 주식 시장은 이 줄기가 단단하고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이기는 판이다. 냉정하게 수치를 분석하는 배우자의 기질은 이 줄기가 강한 영역이다.
나뭇가지(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 :
환경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역동성을 뜻한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처럼 외향적이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내 기질은 사람을 만나 영감을 얻는 창작 활동에 최적화되어 있다.
잎과 열매(생산성과 내면의 자원) :
성취 욕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풍성한 잎은 지적·창조적 욕구를 의미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잎이나 열매는 상실감과 우울감을 반영하기도 한다.
분석과 인내가 필수적인 주식 시장은 내 배우자처럼 '뿌리와 줄기'가 단단한 기질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영역인 것 같다.
반면 나는 '가지와 잎사귀'의 역동성만 믿고 내 기질과 전혀 맞지 않는 남의 전쟁터에 뛰어들어 요행을 바랐던 것이다. 나의 기질적 한계와 자아의 강도를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채 뛰어든 투자는 필연적으로 자산과 멘탈의 파멸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타인을 알아보기 전에, 나를 먼저 알아야 하는 이유
이러한 인과관계의 법칙은 비단 투자뿐만 아니라 '결혼 상대'를 고르는 인생의 중대한 선택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는 주식 시장의 급등주처럼 화려하게 반짝이는 상대방의 '가지와 잎사귀(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이나 나에게 없는 매력)'에 눈이 멀기 쉽다. 내가 어떤 결핍을 가졌는지,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가치(뿌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나와 뿌리가 전혀 다른 사람을 선택해놓고 평생 "왜 이렇게 안 맞지?" 하며 고통받게 된다.
내 뿌리의 깊이와 모양을 명확히 아는 사람만이 배우자를 볼 때 꿰뚫어 볼 수 있다. "저 사람의 표현 방식(잎)은 나와 다르지만, 삶을 대하는 본질(뿌리)은 나와 같구나"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주식 계좌를 과감히 던지고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자산 관리를 일임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나를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상대의 강점을 인정하는 '자기 이해'가 선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인류에게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가장 비싼 수업료를 내고 몸에 새긴 진리 역시 결국 이 고전적인 철학으로 귀결된다. 인생의 거대한 투자도,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고르는 일도, 타인을 분석하고 시장을 예측하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처절하게 들여다보는 능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질문
남을 분석하고 세상을 예측하는 데는 수많은 시간을 쓰면서
정작 '나 자신을 아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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