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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온 질문

팩트 폭력이 정답일까? '판사'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공감을 생각하다

by 와이직 2026. 4. 15.

SNS나 커뮤니티에서 자주 보이는 단골 사연이 있다.

 

"직장 상사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더니,

'근데 그건 네가 일 처리를 미흡하게 한 것도 있네'라며 논리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더라.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서운하고 정이 떨어졌다."

이른바 'T와 F의 차이'로 불리는 일화다.

 

AI 툴로 생성한 이미지

 

 

사실 팩트와 이성을 앞세우는 사람들의 마음 기저에는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주고 싶은 애정'이 깔려 있지만 인간관계에서 팩트와 이성만 앞세우면 인간미가 없어 보이고, 내 감정에 온전히 이입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보편적인 심리다.

 

그런데 최근 『초역 부처의 말』을 읽다가 이와는 결이 조금 다른 문장을 마주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친구는 친구가 아닌 친구인 척하는 사람이므로 가까이하지 마세요.
나쁜 일에도 '응응, 그래'라며 말로 동조합니다.
예컨대, 당신이 누군가를 험담하면서 마음속에 추악함을 쌓아도 적당히 '그래그래'라고 말합니다.
   
- 장부경전 <육방예경>

 

 

 

이 문장 앞에서 잠시 생각이 깊어졌다.

 

그렇다면 무조건 사실만 짚어주는 것이 진짜 친구이고, 상대의 기분에 맞춰주는 것은 나쁜 행동일까?

 

코이케 류노스케 / 포레스트북스 (해당 표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출판사에 있음)

 

 

 

'맹목적 동조'와 '감정의 수용'은 다르다

부처가 경계한 것은 '맹목적인 동조'다.

상대가 악의나 혐오를 뿜어낼 때 무비판적으로 맞장구를 쳐서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행위를 지적한 것이다.

나쁜 생각이 더 큰 부정을 낳는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공감' 자체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속상해할 때 "욕하지 마, 네 기분만 안 좋아져"라며 감정을 통제하거나 차가운 팩트만 내밀면 관계는 단절된다.

 

상대를 일차적으로 인정하고 들어주는 '수용'의 단계가 먼저다.

그 순간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 준 뒤에, 다른 시각을 제시하거나 해결책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인간미이자 성숙한 관계의 방식이다. 상황과 타이밍, 상대의 성향을 고려하여 말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공감의 여백이 사라진 사회, 모두가 판사인 세상

문제는 개인의 관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서 이러한 '적당한 수용과 유연함'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 스레드, 각종 SNS 여론을 보면 혐오와 부정이 넘쳐난다.

내 생각과 다르면 곧바로 '틀렸다'고 단정 짓고, 맹렬하게 그 의견을 피력한다.

전후 사정이나 당사자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공감의 과정은 생략된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민주주의와 인터넷 사회의 특권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무엇이 맞고 틀린지 완벽히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판사'처럼 행동하는 대중이 있다.

섣부른 심판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낸다.

그 상황,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제대로 알 수 없는 진실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다시, 역지사지를 생각하며

개인 간의 대화에서든,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든 결국 가장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태도다.

타인을 심판하기 전에, 혹은 누군가에게 차가운 팩트를 던지기 전에 "내가 만약 저 당사자라면 어땠을까?"라는 사유를 한 번쯤 거쳐야 한다. 이 작은 멈춤과 공감의 여백이 조금 더 유연하고, 너그러운 세상을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오늘의 질문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마음보다 '맞고 틀림'을 먼저 따진 적은 없었나?

 

그때 상대방은 거창한 조언보다, 그저 조용히 '내 편'이 되어주는 공감이 간절했던 것은 아닐까.

역지사지의 태도로, 차가운 팩트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먼저 필요한 순간들을 기억해 보자.

 

오늘의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