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모두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 낮에 마주친 단 한 사람의 무례한 눈빛이나 말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잠을 설쳐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오늘 하루 나에게 친절했던 사람들이 훨씬 많았음에도, 왜 우리의 뇌는 그 고마운 기억들을 다 제쳐두고 오직 그 불쾌했던 순간만을 좀비처럼 되살려내는 걸까. 인간의 기억은 왜 이토록 불공평한 것일까.
14년의 직장 생활이 남긴 냉소, 그리고 뜻밖의 치유
작년 4월, 14년간 다닌 직장을 관두고 이른 오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그리고 나는 1년간 정들었던 편의점을 떠나며, 아르바이트의 마침표를 찍는다. 마지막 근무를 앞두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문득 처음 이곳에 서던 날이 떠올랐다.
오랜 조직 생활은 내 안에 깊은 냉소를 남겨두었었다. 성과와 책임, 서열과 이권이 얽힌 조직 안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면들을 숱하게 목격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을 믿고 있었다. 사람에게 지칠 대로 지쳐있던 상태였다.

퇴사 후, 무너질지 모르는 생활 루틴을 잡고 노동의 가치를 몸소 느끼기 위해 주 3~4일, 오전 4시간씩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에 대한 나의 관점은 완전히 뒤집혔다.
편의점 계산대 앞에 서 있으면 생각보다 세상에는 따뜻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물건을 결제하는 짧은 찰나에도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라고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
뒷사람이 기다릴까 봐 "먼저 계산하세요"라며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 다른 손님이 흘린 물건을 자기 일처럼 챙겨주는 사람까지...
내가 만난 손님이 10명이라면, 그중 상식적이고 평범한 '좋은 사람'은 9명 이상이었다.
덕분에 내 마음은 지난 1년 동안 다시 '성선설' 쪽으로 기분 좋게 기울 수 있었다.
자꾸 곱씹어보는 건 천사가 아닌 돌연변이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9명의 사람들이 온기를 채워주었음에도, 가끔 마주치는 단 1명의 비상식적이고 기분 나쁜 사람이 훨씬 더 강렬하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내 평온을 깨버린 그 1명의 돌연변이 때문에 퇴근 후에도 마음이 찜찜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왜 인간의 기억은 이토록 불공평할까.
심리학과 뇌과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류의 조상들이 맹수와 위험이 도사리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뇌를 그렇게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바나나는 안 먹어도 생존에 지장이 없지만, 수풀 속 독사는 0.1초 만에 감지하고 기억해 두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다.
실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인간이 '상실이나 고통'을 기쁨보다 2배 이상 강하게 느끼는 '손실 회피 성향'을 증명한 바 있다. 뇌과학적으로도 감정을 담당하는 뇌 속 편도체는 불쾌하거나 위협적인 자극을 받았을 때 이성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하며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즉, 나에게 친절했던 9명의 손님은 내 예측 범위 안에 있는 '안전한 상태'이기에 뇌가 굳이 에너지를 써서 기억하지 않고 흘려보낸다. 반면 1명의 무례한 인간은 시스템에 비상 경보를 울리는 '위험 요소'로 인지하기 때문에,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머릿속에서 무한 리플레이를 돌리는 것이다.
결국 불쾌한 기억이 오래 남는 건 내가 유난히 예민하거나 나약해서가 아니다. 내 뇌의 생존 방어 기제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이 원리를 깨닫고 나니 비로소 그 1명의 잔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뇌가 정상 작동하느라 보낸 '경고 팝업창'일 뿐인데, 고작 그런 인간들을 기억하는 데 내 소중한 메모리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미디어 속에서 발견한 담백한 위로, 《소라와 진경》
시선을 바꾸니 일상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자극적인 콘텐츠보다는 자꾸만 따뜻하고 배려심이 돋보이는 장면에 시선이 머문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소라와 진경》을 보며 깊이 공감했던 장면이 있다.
파리 패션위크에 도전하는 그 둘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인데, 파리에 도착한 홍진경이 차 안에서 "여기서 정말 후회하지 않게, 매 순간 집중해서 잘 즐기고 싶어"*라고 다짐하듯 말하자, 이소라는 담백하게 외친다.
"언니도 그렇게 할게. 걱정하지 마."
상대의 무거운 다짐을 개인의 숙제로 남겨두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동참과 안심으로 받아쳐 주는 그 마음이 참 예뻐 보였다.

또 브랜드 캐스팅 오디션을 앞두고 긴장한 이소라에게 홍진경은 그녀만의 투박한 방식으로 위로를 건넨다.
"언니 만약에... 하나도 안 돼도 한식당에서 소맥이나 때리자."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아 언니가 낙담할까 봐 부담을 덜어주려는 '진경식' 위로였다.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로를 건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참 몽글몽글해졌다.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와 장점을 발견해 주는 그 장면들이, 지난 1년간 내가 편의점 계산대에서 만난 온기 가득한 손님들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 보였다. 비난과 혐오가 가득한 미디어 홍수 속에서 내가 진짜 찾아 헤매던 장면이 바로 이런 것이었음을 느낀다.
1년의 마침표, 그리고 소중한 9명의 온기
지난 1년은 내게 단순한 아르바이트 그 이상이었다.
조직을 떠나 냉소로 가득 찼던 마음에 다시금 '인간의 선함'을 채워 넣는 치유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1명의 무례함에 마음을 빼앗겨 9명의 소중한 온기를 놓치며 살아가곤 한다.
하지만 행복은 어쩌면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일상의 순간순간 속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잔잔한 교류와 배려를 온전히 내 것으로 기억하는 능력에 달려있는지 모른다.
오늘 밤, 당신의 잠자리를 방해하는 그 1명의 빌런은 그저 뇌가 생존을 위해 띄운 '팝업 경고창'일 뿐이다.
그러니 아무 상처받지 말고 조용히 닫기 버튼을 누른 채, 오늘 나를 스쳐 간 9명의 다정함을 떠올려보기를 권한다.
나를 지켜준 내 정상적인 뇌에게 고마워하며, 이제는 그 소중한 메모리를 온전히 다정한 이들을 위해 쓸 시간이다.
오늘의 질문
오늘 당신의 하루에 머물렀던 9명의 온기는 어떤 모양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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