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족과 평창 발왕산에 갔다.
케이블카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입구에 부채가 놓여 있었다.
케이블카 안이 더우니 이용하라고 준비해둔 부채라고 생각해 하나를 들고 탔다.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반납할 곳을 찾았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위에도 반납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올라가는 동안 사용하라고 준비해둔 부채라면 정상에서 반납할 수도 있게 해두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들과 작은 토론이 시작됐다. 가족들의 의견은 대체로 비슷했다.
“원래 있던 곳에 다시 가져다 놓아야지.”
빌린 곳이 아래라면 내려갈 때 그곳에 반납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나처럼 케이블카 안에서 쓰라고 준비해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상에도 반납함을 하나 두면 이용객 입장에서는 더 편하지 않을까?
정해진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대체로 “그래도 원칙은 지켜야지”라는 쪽이었고, 그날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며칠 뒤, 상황이 뒤집혔다.
가족과 전망이 좋은 한 카페에 갔다.
사람이 많은 곳이었고, 그중에서도 전망이 특히 좋은 4인석이 인기가 많았다.
당시 다른 자리도 비어 있었고, 앞서 온 사람들 중에는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면서도 인원수를 생각해 다른 자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세 명이 온 일행이 그 4인석에 앉았다.

당시 다른 자리도 비어 있었고, 앞서 온 사람들 중에는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면서도 인원수를 생각해 다른 자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세 명이 온 일행이 그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카페에서 놓아둔 것으로 보이는 ‘4인석’이라는 팻말도 있었다.
물론 그 팻말이 반드시 네 명만 앉아야 한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세 사람이 4인석에 앉으면 안 된다는 별도의 안내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조금 불편했다.
다른 자리도 있는데 굳이 여러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인기 있는 자리를 차지해야 할까?
앞서 온 사람들은 앉고 싶어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 앉지 않았는데 말이다. 특히 그전에 2~3명이 온 손님들이 그 자리에 잠시 앉아 사진만 찍고 다시 자리를 비워주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족의 반응이 의외였다.
“그럴 수도 있지.”
오히려 그 모습을 불편해하는 나에게 너무 깐깐하게 따지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발왕산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니, 그때는 원칙이 중요하다며?'
발왕산에서는 정해진 방식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왜 여기서는 이렇게 너그러울까.
그때는 융통성을 이야기했던 내가 이번에는 오히려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 판단보다 가족의 판단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의 기준이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달라져도 되는 건가?’
나는 가족의 이중잣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마이클 슈어의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을 읽다가 질문이 나에게 돌아왔다.

책에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여러 철학자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대목들이 나온다. 그 중 인간의 이기심을 다루는 부분에서 아인 랜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 아인 랜드 (Ayn Rand, 1905~1982)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이자 철학자. 개인의 이성과 자기 이익을 중시하는 ‘객관주의(Objectivism)’를 제창했다.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에서는 ‘합리적 이기주의’를 논하는 과정에서 소개된다.
"본질적으로 내 철학에서는 인간을 영웅적 존재로 여긴다.
인간 자신의 행복을 삶의 도덕적 목적으로 하고 생산성 있는 성취를 인간의 가장 고결한 활동으로, 이성을 유일한 절대자로 삼는다."
- 그녀의 소설 『아틀라스』 의 맺음말 중
랜드는 자신의 행복과 자기 이익을 중시하는 철학을 주장했다. 마이클 슈어는 이러한 합리적 이기주의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물론 우리는 매번 완벽하게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때로는 나를 먼저 생각하고, 타인의 필요를 놓치기도 한다. 그래서 책에서는 자신이 윤리적으로 무심했던 순간을 인지하고 기억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기적으로 점검해보는 것을 하나의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그 부분을 읽는데 문득 카페에서 가족에게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는 원칙이 중요하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질문을 조금 바꿔보았다.
'나는? 나는 정말 두 상황에서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있었을까?'
나는 원칙을 지킨 걸까, 필요한 원칙을 골랐던 걸까
발왕산에서는 내가 융통성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충분히 오해할 수 있으니 이용자의 편의를 조금 더 고려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반면 카페에서는 내가 원칙에 가까운 것을 주장했다.
다른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라면 자신의 편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둘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에, 처음에는 두 판단이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불편한 지점이 보였다.
'두 상황에서 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나는 상황에 따라 원칙과 융통성 중 더 옳은 쪽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나에게 더 유리한 쪽을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이 있었고, 그다음에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던 것은 아닐까.
내가 불편할 때는 원칙을 찾고, 내가 편의를 원하는 순간에는 융통성을 찾았던 것은 아닐까.
가족의 기준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며 답답해했던 나 역시,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합리적인 걸까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생각하게 만든 철학자가 있었다. 도덕철학자 T. M. 스캔론이다.

💡 팀 스캔론 (T. M. Scanlon, 1940~ )
미국의 도덕철학자. 계약주의 윤리학으로 알려져 있으며,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에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때 무엇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의 철학이 소개된다.
책에서 마이클 슈어는 스캔론의 철학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너무 쉽게 사용하는 ‘합리적’이라는 말을 들여다본다.
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에게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고 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이라면, 나의 필요만큼 다른 사람의 필요도 생각해야 한다. 스캔론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정당화할 수 있는 원칙을 찾는 것에 가깝다.
그 이야기를 다시 두 상황에 대입해봤다.
발왕산에서 나는 이용자의 편의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카페에서는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에서 인기 있는 4인석을 비워두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두 판단 모두 결국 '내가 바라본 합리성'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필요한 질문은 “누구의 판단이 옳았을까?”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가 아닐까.
타인의 모순보다 발견하기 어려운 것
그렇다고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의 원칙만을 고집하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황은 매번 다르고, 때로는 원칙보다 융통성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앞으로 어떤 순간에는 원칙을 이야기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할 것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판단이 달라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왜 나는 지금 이 판단을 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가족의 이중잣대는 금방 보였다.
하지만 내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는 책 한 권과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음번 누군가의 행동을 보며 “왜 저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할 때만 저런 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나에게도 한번 물어보고 싶다.
"나는 정말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답을 먼저 정해놓고, 그 답에 맞는 원칙을 골라 들고 있는가."
타인의 이중잣대를 발견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어쩌면 내 판단 속에 숨어 있는 이기심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질문
나는 정말 원칙대로 판단하고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정해놓고,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한 원칙을 꺼내 들고 있는 건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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