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는 이상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하지 못했다.
책을 거의 읽지 못했고, 운동도 하지 못했다. 매주 해오던 콘텐츠 작업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은 계속 해냈지만, 정작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들은 자꾸 뒤로 밀렸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콘텐츠 퀄리티가 예전보다 떨어지는 것 같았고, 운동을 못 하면 계획에서 밀려난 기분이 들었다.
잠드는 시간은 늦어졌고, 가까운 사람에게 괜히 짜증을 내는 날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책을 읽을 집중력은 없으면서 인터넷은 계속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행 일정을 검색하고, 살 물건을 찾아보고, SNS와 유튜브를 넘겨봤다.
책 몇 페이지를 읽는 건 그렇게 어려운데,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탐색하는 일은 쉬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짧고 자극적인 도파민에 너무 익숙해진 걸까?'
그러던 중,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한 책 『책 읽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났다.

책을 읽는 일에는 ‘노이즈’가 필요하다
이 책은 메이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일본에서 독서와 노동을 바라보는 관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다룬다.
읽는 동안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엘리트에게는 교양과 수양으로, 노동계층에게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독서의 의미를 구분 짓던 시대적 관념 때문이었다. 독서는 유식함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취미일 수도 성장의 수단일 수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별로 와닿지 못한 내용이었다.
현대로 오면서 자기계발과 독서를 연결하는 모습에서는 우리 사회와 닮은 부분도 보여 조금 씁쓸했다.
하지만 결국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머문 대목은 다시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책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와 독서를 통해 얻는 ‘지식’을 구분한다.
- 정보: 내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이미 안다. 여행지, 숙소, 상품 비교처럼 질문이 명확하고 필요한 답을 얻으면 끝난다.
- 지식(독서): 내가 알고 싶었던 것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책이 가진 역사와 맥락,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생각과 연결된다.
책에서는 이런 예상 밖의 맥락을 ‘노이즈’라고 표현한다.
그 대목을 읽다가 문득 9월의 내가 이해됐다. 나는 책이 싫어진 게 아니었다. 새로운 맥락과 노이즈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내게 부족했던 건 정말 시간이었을까
9월을 다시 돌아봤다. 알바를 주 4회 하고 있었고, 여행도 있었고, 연휴와 크고 작은 일정들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알바 시간을 늘린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몇 시간을 일했는가'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나의 일정에는 그에 실제로 쓰는 시간만 들어가지 않는다. 준비하고, 이동하고, 끝난 뒤 돌아와 머리를 전환하는 에너지까지 필요하다. 여행 역시 며칠의 시간만 차지하는 게 아니라, 예약하고 짐을 싸고 복귀하는 과정 내내 머릿속 한쪽을 계속 차지한다.
문제는 남은 시간의 양보다, 한 가지 일에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연속된 에너지와 여유'였다.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에너지가 파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행 일정 검색 같은 단편적인 '정보 탐색'은 할 수 있었지만, 책을 펼쳐 새로운 맥락 속으로 들어가거나 긴 생각을 이어가야 하는 콘텐츠 작업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나는 이미 ‘반신’으로 살고 있었다
책에서 또 하나 오래 남은 개념은 ‘전신전령(전력투구)’과 ‘반신(半身)’이었다.
저자는 하나의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삶에서 벗어나, 일과 다른 활동을 병행하며 여러 맥락 속에 자신을 두는 '반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 부분을 읽다 보니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 아닌가?'

작년 5월부터 약 15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둔 뒤, 하나의 직업이나 역할에 삶 전체를 걸지 않고, 일도 하고, 콘텐츠도 만들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며 여러 길을 오가는 삶을 선택해왔으니까. 그런데 9월에는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러 삶을 선택해놓고, 그 모든 영역에 '전신전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바도 제대로 해내야 하고, 콘텐츠도 꾸준히 만들어야 하고, 책도 계속 읽어야 하고, 운동도 빼먹지 않아야 하고
좋아서 선택한 일마다 어느 순간 ‘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 시작했다.
읽고 싶다가 '읽어야 한다'가 되었고, 만들고 싶다가 '이번 주에도 만들어야 한다'가 되었다.
좋아함에 횟수와 일정, 그리고 성과라는 목적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여러 가지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모든 것에 생산성을 요구하기 시작한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아서 시작한 일은 언제부터 일이 되는 걸까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에 목표가 없어야 한다거나, 일이 되는 순간 좋아하지 않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좋아서 시작한 이 작업노트 역시 지금의 나에게는 분명 소중하고 중요한 작업이다. 무언가를 오래 이어가려면 일정과 목표가 필요하고,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성장을 이끌기도 한다. 어쩌면 좋아함과 일 사이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마감이 생겼을 때일 수도 있고
-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기 시작했을 때일 수도 있고
- 수익이 발생했을 때일 수도 있고
- 혹은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계속 잘해야 한다’는 기대를 부과하기 시작했을 때일 수도 있다.
나의 9월은 마지막에 가까웠다.
책에서는 새로운 맥락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 때는 쉬어도 된다고 말한다. 회복한 뒤 다시 새로운 맥락을 받아들이고 싶어졌을 때 책을 읽으면 된다고. 그 문장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책을 읽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거나 실패 목록에 올릴 필요가 없었다.
단지 지금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잠시 비어있을 뿐이었다.
빈 시간을 다시 채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10월에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고 한다. 우선 알바를 주 4회에서 주 2회로 줄였다.
그리고 비어 있는 자리에 또 다른 계획을 빽빽하게 집어넣지 않으려 한다.
이번에는 빈 시간을 잘 활용하는 연습이 아니라, 빈 시간을 그냥 빈 시간으로 두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이 선택으로 다시 책이 잘 읽히고 콘텐츠에 깊게 몰입하게 될지 결과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 미리 증명하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당분간은 '이번 주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나'보다 '내가 살아가고 싶었던 삶의 방향에 시간을 썼는가'를 더 중요하게 바라보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 좋아할 수 있는 여유를 남겨두는 일일지도...
아직은 답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의 작업노트에는 이 질문을 남겨둔다.
좋아서 시작한 일은, 대체 언제부터 ‘일’이 되는 걸까?
목적과 생산성이 붙기 시작하는 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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