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는 귀스타브 르 봉의『군중심리』를 읽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떠오른 두 작품이 있었습니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코뿔소』, 조지 오웰의『1984』입니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 속해 있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생각을 포기하는가?

군중심리 — 개인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귀스타브 르봉은 군중 속에 들어간 개인이 혼자 있을 때와 전혀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군중 속 개인은 더 이성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오히려 비판 능력을 잃고, 감정에 더 쉽게 전염됩니다.
논리보다는 이미지, 반복, 분위기에 반응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리석음이나 악의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군중은 개인에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을 제공합니다.
책임은 분산되고, 판단은 위임됩니다.
군중심리는 그래서 폭력으로 생각을 막기 전에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코뿔소』 — 왜 사람들은 변하는가
이오네스코의 『코뿔소』에서 사람들은 어느 순간 하나둘 코뿔소로 변합니다.
이 변신에는 명확한 이유가 없습니다. 설득도, 논쟁도, 논리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코뿔소가 되는 일이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점점 코뿔소의 수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변하지 않은 사람이 이상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코뿔소가 되었는지가 아니라
'왜 변하지 않는 것이 점점 견디기 어려워졌는가?' 입니다.
『코뿔소』는 악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군중 속에 들어간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책 속의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를 깊이 이해해서 변한 것이 아니라,
흐름에 편승했고 “다들 그러니까”라는 이유에 적응하여 코뿔소가 된 것 뿐입니다.

『1984』 — 코뿔소가 많아진 세상
『1984』는 코뿔소가 너무 많아진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처럼 읽혔습니다.
이곳에서 통제는 폭력보다 언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검열은 금지가 아니라 생각할 언어 자체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윈스턴은 소설 속에서 “희망이 있다면 무산계급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 윈스턴이 붙잡고 있는 마지막 기대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무산계급은 감시받지 않지만 사고를 구조화할 언어를 갖지 못합니다.
즉, 분노는 있어도 그것을 생각으로 묶어낼 도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1984』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의 핵심은
사람들이 저항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저항을 생각할 수 없게 된 사회입니다.

군중 속 개인과 역사
르봉은
군중 속 개인의 행동이 의식적인 판단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반응일지라도
그 축적이 결국 역사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군중 속 개인의 행동은 대개 사소하고, 즉각적이며, 무의식적입니다.
하지만 그 축적은 사회 전체의 방향을 바꿉니다.
군중이 각자 독립적인 생각을 유지한 채 이성적인 판단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지난 글인 『왜의 쓸모』을 인용하여 한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군중 속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왜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흐름에 떠밀리지는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코뿔소』나 『1984』가 그린 세계가 완전히 피할 수 없는 미래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질문
지금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판단은 정말 나의 생각일까요,
아니면 군중이 정해놓은 방향일까요?

군중 속에서 이유를 잃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조차 이유를 말하지 못하는 순간, 생각은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 책에서 온 질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리는 단 한 번도 유교를 버린 적이 없다 - 70년대생과 90년대생 사이, 80년생 낀 세대의 고백 (0) | 2026.03.19 |
|---|---|
| '월든'의 낭만과 '세이노'의 독설 사이, 내가 서 있는 곳 (0) | 2026.02.19 |
| 『왜의 쓸모』를 읽고... 이유는 설명이 아니라, 관계를 드러내는 언어 (0) | 2026.01.12 |
| 『도파민 디톡스』 —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더 불행해진 이유 (0) | 2026.01.05 |
| 『시지프 신화』를 읽고 - 본질주의, 실존주의, 그리고 부조리 (3) | 2025.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