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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온 질문

『시지프 신화』를 읽고 - 본질주의, 실존주의, 그리고 부조리

by 와이직 2025. 12. 22.

『시지프 신화』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삶의 의미"라는 주제에 대해 오래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우울한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인간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끝까지 읽고 나니 이 책은 오히려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정직해질 수 있는지를 묻는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여러 철학적 태도들이 떠올랐고,
저는 그것을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해보게 되었습니다. 본질주의, 실존주의, 그리고 카뮈의 부조리 철학입니다.

이 글은 철학 이론을 정리하려는 글이 아니라『시지프 신화』를 읽으며 제가 이해하게 된 하나의 사유 흐름에 가깝습니다.

 

 

알베르 카뮈 / 민음사 (해당 표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출판사에 있음)

 

 

 

본질주의 – 의미는 이미 주어져 있다는 생각

본질주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어떤 본질 (의미, Meaning)을 가지고 태어난다고요.

우리는 우연히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되어야 할 모습, 완성해야 할 역할을 지닌 존재라는 관점입니다.

이 구조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닮아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고 삶은 그 목적에 가까워지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관점에서 삶의 의미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의미를 얼마나 잘 살아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본질주의적 질문은 보통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는 어떤 존재로 태어났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의미는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실존주의 – 의미는 주어지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생각

실존주의는 이와는 다르게 출발합니다. 

인간에게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 없으며 우리는 먼저 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 다음에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해간다는 생각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보다 “지금까지 이렇게 선택해왔다”라는 말이 더 중요해집니다.

 

저는 이 태도가 알프레드 아들러의 목적론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들러는 인간이 과거의 원인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의 목적을 향해 행동하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와 아들러의 공통된 지점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간에게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 선택할 자유가 있다
  • 그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인간에게 있다

이 관점에서 삶의 의미는 어디선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미, 목적에 따라 선택과 행동 속에서 점점 형성되는 것입니다.

 

 

카뮈의 부조리 철학 – 의미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

카뮈는 실존주의의 철학을 따라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알베르 카뮈 스스로가 실존주의가 끝난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했죠.

카뮈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시지프 신화』입니다.

카뮈는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세상은 그 질문에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 간극, 의미를 요구하는 인간과 침묵하는 세계의 충돌을 카뮈는 부조리라고 불렀습니다.

중요한 점은 카뮈가 이 부조리를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에게 기대지도 않았고, 새로운 절대적 의미를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부조리함을 인식한 채 살아라"

세상이 의미없음을 알고도 살아가는 것이죠.

 

이 부분을 읽으며 저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와 집착 내려놓기가 떠올랐습니다.

의미를 붙이려는 마음 자체가 오히려 고통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와 집착 내려놓기가 떠올랐습니다.
의미를 붙이려는 마음 자체가 오히려 고통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카뮈는 초월이나 해탈을 말하지 않고, 카뮈의 철학과 불교는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의미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태도가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세 가지 태도로 삶을 바라본다면

정리해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본질주의는 말합니다.
    → 의미는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 실존주의는 말합니다.
    →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 부조리 철학은 말합니다.
    → 의미가 없어도 삶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삶의 국면에 따라 이 세 가지 태도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길을 잃었을 때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고

선택의 순간에는 “이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모든 것이 허무해질 때는 의미를 잠시 내려놓고 숨을 고릅니다.

 

 

오늘의 질문

의미를 찾고 있는 중일까?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일까?
아니면 의미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의 질문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