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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에서 온 질문

《나는 솔로 31기》 논란, 우리가 진짜 비난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by 와이직 2026. 5. 18.

최근 《나는 솔로 31기》가 연일 화제다.

단순히 남녀의 매칭 과정을 보여주는 예능을 넘어 한 출연자가 고립감을 호소하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방송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와 댓글창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특정 출연자들의 언행을 지적하며 인성을 비판하고, 이른바 '빌런 3인방'이라 명명하며 날 선 비난을 퍼붓는 글들이 지배적이다.

 

제한된 방송 화면 속에서 드러난 그들의 품격 낮은 언행이나 태도를 보며 대중이 공분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죽 심했으면 저렇게까지 편집되었겠냐", "저 정도 모습만 봐도 평소 인성이 보인다"라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난 릴레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진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향해 극단적인 혐오를 퍼붓는 세상은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한 명의 악마를 찾아내 매장하면, 다음 기수에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 』 는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 하나를 짚어준다.

바로 '비난 본능(Blame Instinct)'이다.

 

한스 로슬링 / 김영사 (해당 표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출판사에 있음)

 

 

 

잘못한 쪽을 찾아내려는 이 본능은 진실을 찾아내는 능력,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방해한다.
비난 대상에 집착하느라 정말 주목해야 할 곳에 주목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지극히 단순한 해법에 갇히면 좀 더 복잡한 진실을 보려하지 않고
우리 힘을 적절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면상을 갈겨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지극히 단순한 인과관계에 갇혀버린다.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니까 이런 문제가 터진 거야"라며 개인의 인성 문제로 결론을 내면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이 단순한 해법은 정작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진실'과 '방지책'을 가려버린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첫 번째 진실은 '상황적 맥락'이다.

우리는 24시간 통제된 환경, 극도의 긴장감과 고립감을 유발하는 특수한 상황에 노출되어 본 적이 없다.

단편적으로 가공된 편집본만으로 한 인간의 온전한 맥락을 다 안다고 확신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 있다.

 

두 번째로, 가장 중요한 진실은 이 판을 짠 '미디어 시스템'이다.

책에서 저자는 언론과 미디어를 향해 날카로운 통찰을 던진다.

 

 

언론은 중립적이지도 않고, 중립적일 수도 없으며, 그걸 기대해서도 안 된다.
언론인이 세계를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유(그들도 극적 본능을 지닌 인간이라서)와 언론 시스템의 어떤 요소가
그들로 하여금 왜곡되고 과도하게 극적인 뉴스를 내보내게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방송사와 언론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소비자의 주의를 사로잡는 경쟁을 해야 하고, 직장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인간들이 모인 철저한 상업적 시스템 위에서 움직인다.

대중이 자극적인 갈등에 열광하고 누군가를 비난할 때 유입이 폭발한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출연자의 심리적 보호나 안전장치보다는, 갈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편집의 가위를 휘두른다.

 

비난 여론이 들끓을수록 대중은 분노하지만, 역설적으로 방송사는 최고의 시청률과 VOD 수익을 올린다.

결국 대중의 비난 본능은 미디어 시스템이 파놓은 자극적인 함정에 완벽히 걸려든 셈이다.

누군가를 악마로 만들어 손가락질하는 것은 가장 쉽고 짜릿한 해결책이다.

 

책의 저자는 비난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찾아라"라고 조언한다.

나쁜 일은 애초에 의도한 사람이 없어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상황을 초래한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스템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분노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가해자를 향해 무차별적인 돌을 던지고 혐오의 언어를 보태는 일은 세상을 더 거칠고 험악하게 만들 뿐이다.

그 타오르는 분노의 에너지를 조금만 가라앉히고, 그 힘을 피해자를 향한 따뜻한 위로와 예쁜 말로 돌려보면 어떨까.

 

"방송에 나간 순자가 안타까울 정도였어요. 나는 솔로가 품기엔 깊고 따뜻한 미소가 아름다운 분이셨어요.

좋은 인연과 따뜻한 사람 만나시길 바랄 뿐입니다."

 

가해자의 인성을 바닥까지 파헤치며 비난하는 수천 개의 댓글보다

상처받은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 한 줄의 따뜻한 에너지가 모일 때 세상은 비로소 바뀐다.

 

누군가를 악마로 만들어 손가락질하는 자극적인 카타르시스에 머물지 않고, 다친 이의 손을 잡아주는 온기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미디어의 영악한 시스템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힘을 진정으로 적절한 곳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오늘의 질문

오늘 당신이 본 뉴스나 영상의 댓글창에서, 당신은 잘못한 이에게 던질 날카로운 돌멩이를 찾고 있나요?

아니면 상처받은 이에게 건넬 따뜻한 한마디를 고르고 있나요?

 

 

오늘의 질문